다음에는 역시 영종역사관 자문위원인 서병구 선생님의 소개로 지난 6일(일) 용유도 지역에서 풍물단원으로 활동하셨다는 김득수(金得洙, 86세), 정인화(鄭寅化, 84세) 어르신들을 만났다. 두 분은 용유도 을왕리 지역 늘목마을 못우물에서 태어나고 여태까지 사신 토박이라고 한다. 나이는 두 살 차이가 나지만 용유국민학교를 같이 다니고 평생을 친구로 살아오신 죽마고우다. 두 분은 1958~9년도에 군대 가기 전에 젊었을 때 동네에서 풍물단원으로 활동했는데 김득수 어르신은 북잡이, 정인환 어르신은 장구를 연주했다. 군대를 다녀온 후인 1960년대에는 풍물단 놀이가 이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매년 정초에서 보름까지 마을 집집마다 다니며 풍물과 덕담을 해 주었고, 덕담을 말해 주는 단원의 말솜씨가 좋아서 누구나 감탄을 했다고 한다. 대보름날에는 집집마다 추렴한 쌀과 돈을 모아 도가집 마당에서 동네 잔치 마당을 벌였는데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흥겹게 놀았고, 풍물단도 사자놀음, 양반놀음, 곱추, 양반, 포수, 여복(女服) 등을 구성해서 재미있게 놀았다고 한다. 마을에 손 재주가 좋은 이무강이라는 분이 있어서 3미터 가량의 용기(龍旗)를 만들어 깃발을 앞 세우고 다녔으며, 이웃 마시랑 마을에서 공연 초대를 받아 다녀 오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용유도에 영종도 풍물단 하나가 와서 풍물을 겨뤘는데 패하고 깃발을 거꾸로 들고 간 일이 있다는 무용담을 들려 주었다. 용유도 늘목마을 농악단도 3층무동을 했으며 이기춘이라는 분이 맨 아래에 서고, 가운데 중아이를 맡은 김칠봉씨를 탄력을 줘서 집어 던지면 멋지게 받아내는 솜씨가 일품이었다고 한다. 김기복이라는 분이 모개비를 하면서 풍물놀이 일정을 잡고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면서 추렴도 잘해서 풍물단이 맘 놓고 놀았다고 한다. 풍물단은 15~18명으로 구성됐는데 깃발, 호적, 상쇠, 부쇠, 제금(바라), 징, 장구, 북, 소고의 순으로 움직였으며 흥이 나서 놀기 시작하면 밤새 놀기도 했다고 한다. 용유동 어르신들도 풍물을 어렸을 때부터 익혀서 따로 배우지 않고도 어른들이 역할을 주면 바로 단원으로 활동을 했다고 한다. 정인화 어르신은 장구를 칠 때 한 손은 채를 잡지 않고 맨손으로 연주하기 때문에 요즘 장구 치는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하신다. 정인화 어르신의 부친도 북잡이였으며, 정경태라는 분이 상쇠로 활동하며 상모돌리기를 무척 잘 했다고 한다. 풍물과 함께한 가락으로 길군악, 자진가락, 춤가락, 양반놀이가락, 무동놀이가락 등이 있었다고 한다.풍물놀이를 왕성하게 하던 1950년대에 마을에는 약 130가구가 살았다고 하며, 지금은 약 300세대가 되지만 풍물은 이어지지 않고 있어서 아쉽다고 하신다.
이분들은 지금이라도 잘 하는 상쇠가 있거나 음악이 있으면 장구와 북은 언제든지 칠 수가 있다고 노익장을 과시하신다. 취재진으로 함께 간 춤동동 이야기할머니 배정인 선생님은 장고와 북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무척 아쉬워 하며 가까운 시일 내로 다시 찾아 뵙고 연주를 부탁드리기로 했다. 어르신들도 흔쾌히 승낙하며 후일을 기약했다.